월드스타와 다한증
여기 36세의 청년이 있습니다.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아내의 남편입니다.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좋은 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남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겨드랑이와 엉덩이에 땀이 많이 나서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누군지 대충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이름은 바로 “싸이(PSY)”입니다.
그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전세계적으로 무려 2억 차례나 재생되었고, 그는 미국의 CNN, ABC, NBC등의 유력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평소에 대한민국에는 관심도 없던 외국인들이 ‘강남’을 올바로 발음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팝송을 따라 부르기 위해 되지도 않은 영어를 연습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집니다.
물론 “싸이”씨는 본인이 다한증으로 고생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제가 직접 만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TV를 볼 때 그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유독 땀을 많이 흘리고, 땀으로 인해 민망한 영상이나 사진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의 활동에 제약을 주는 경우도 없고, 그도 역시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한증을 진료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한증 진료를 하다 보면 연령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중, 고등학생, 대입을 위해 계속 준비중인 분, 대학생, 대학원생, 회사원, 의사나 변호사 등과 같이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 전업주부, 고시 및 여러 시험을 준비하는 분, 운동선수, 피아니스트, 연예인이 되기 위해 연습생으로 지내는 분, 연예인 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분야 곳곳에 다한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한증이라는 것이 매우 불편한 증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볼 때는 이 다한증이라는 것은 하나의 핸디캡 (handicap)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핸디캡이 각자의 상황에 따라 크게 작용할 수도 있고, 작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특히나 한창 예민한 중고등학생들이 땀으로 인해 위축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를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여러 다한증 선배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곤 합니다. 이들이 장성해서 어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다한증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다한증은 불편합니다. 이를 치료하는 방법들이 나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지만 다한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 또한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땀은 99%의 물과 0.1%의 요소, 0.8%의 염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액체입니다.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사람에게 닿았다고 하여 질병을 옮기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남에게 나의 땀을 좀 묻힌다고 하여 너무 미안해 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다한증이 없는 사람들도 다한증이 있는 사람을 대할 때 이 사람이 특이한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키와 몸무게가 다르고, 같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는 사람이 있고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땀이 나는 정도가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 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위에서 말한 “싸이”의 경우에도 그가 흘리는 땀이 그의 노력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세세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이런 핸디캡을 안고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것은 다한증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땀을 흘려야 했을 것 입니다. 이는 다한증이 있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를 하실 것 입니다.
단기간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한증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변하지는 않겠지만, 다한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이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다한증이 없는 이들보다 더욱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한증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올바르게 자리 잡히게 될 것 입니다.
2012년 9월
다한증 환자이자 의사인 김동현.
댓글을 남겨주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